디지털자산기본법, 핀테크 개발자가 주목해야 할 포인트
ICO 허용, 무과실 배상책임, 그리고 스테이블코인 제도화의 의미
여는 글
요즘 핀테크 업계에서 가장 뜨거운 키워드는 단연 ‘디지털자산기본법’입니다. 12월 19일 금융위원회 업무보고를 기점으로 2단계 입법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내년 1~2월 국회 본회의 처리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저 역시 핀테크 도메인에서 정산, 결제 관련 시스템을 개발하는 입장에서 이번 법안의 흐름을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단순히 ‘코인 투자자’의 시선이 아니라, 시스템을 설계하고 운영하는 개발자의 시선으로 이번 법안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정리해보려 합니다.
1. ‘가상자산’에서 ‘디지털자산’으로: 단순 명칭 변경이 아니다
정부안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 중 하나는 ‘가상자산’이라는 용어를 ‘디지털자산’으로 변경한다는 점입니다. 단순한 네이밍 변경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글로벌 규제 정합성을 맞추기 위한 중요한 포석입니다.
미국의 GENIUS Act나 EU의 MiCA(Markets in Crypto-Assets) 규정 모두 ‘Digital Asset’ 또는 ‘Crypto-Asset’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한국만 ‘가상자산’이라는 별도 용어를 고수할 경우, 국제 협력이나 규제 논의에서 정의 충돌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개발자 입장에서 보면, 이는 API 명세나 데이터 모델 설계 시 용어 통일이 가능해진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글로벌 서비스를 염두에 둔 시스템이라면 virtual_asset보다 digital_asset이라는 네이밍이 더 자연스러워지는 셈이죠.
2. ICO 허용 8년 만에: 백서 공시와 연대 책임
2017년 이후 사실상 금지되었던 국내 ICO(Initial Coin Offering)가 8년 만에 허용됩니다. 그동안 국내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은 해외 법인을 설립해 코인을 발행한 뒤 국내 거래소에 우회 상장하는 방식을 써왔는데, 이런 편법이 제도권 안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하지만 ICO 허용에는 강화된 책임이 따릅니다.
| 위반 사항 | 책임 주체 |
|---|---|
| 백서 허위 기재 | 발행인 |
| 중요 사항 누락 | 발행인, 위탁 운영자 |
| 시세 조종 | 마켓메이커 포함 연대 책임 |
기술 위탁사까지 연대 책임이 확대된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블록체인 프로젝트의 스마트 컨트랙트 개발을 외주 받는 개발사나, 토큰 이코노미 설계를 컨설팅하는 업체도 책임 범위에 들어올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외주 개발자 입장에서는 계약서에 책임 범위와 면책 조항을 명확히 해두는 것이 중요해질 것 같습니다.
3. 무과실 손해배상책임: 보안이 곧 생존이다
이번 법안에서 개발자가 가장 주목해야 할 조항은 무과실 손해배상책임입니다.
해킹·전산 장애 등 사고 발생 시 전자금융거래법에 준해
거래소 등 디지털자산업자에 대한 무과실 손해배상책임 부과
기존에는 거래소가 해킹을 당해도 “우리도 피해자”라는 논리로 면책 여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법안이 통과되면, 이용자의 고의나 중과실이 없는 한 거래소가 해킹 피해 전액을 배상해야 합니다.
이게 개발자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보안 투자 증가
거래소 입장에서는 해킹 한 번으로 수백억 원의 배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당연히 보안 인프라 투자가 늘어날 수밖에 없고, 이는 보안 개발자, 인프라 엔지니어의 수요 증가로 이어질 것입니다.
방어적 코드 작성의 중요성
시스템 개발 시 “이 정도면 되겠지”가 아니라, 모든 예외 상황에 대한 방어 로직이 필수가 됩니다. 금융권에서 이미 적용되는 전자금융거래법 수준의 보안 기준이 디지털자산 업계에도 적용된다는 의미입니다.
감사 로그와 모니터링
사고 발생 시 “우리 잘못이 아님”을 입증하려면 철저한 로깅과 모니터링이 필수입니다. 이용자의 고의나 중과실을 입증하려면 상세한 행위 로그가 남아있어야 하니까요.
4. 스테이블코인 제도화: 50억이면 발행 가능?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위한 자기자본 요건이 50억 원 수준으로 검토되고 있습니다.
| 금융업종 | 자기자본 요건 |
|---|---|
| 전자화폐 발행업 | 50억 원 |
| 인터넷전문은행 | 250억 원 |
| 스테이블코인 발행 (검토안) | 50억 원 |
학계에서는 인터넷전문은행 수준인 250억 원을 제기했지만, 금융위는 “초기 운영 비용과 최소한의 손실 흡수 능력”을 고려해 50억 원이 적정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핀테크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은 진입 장벽입니다. 시리즈 A~B 정도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이라면 도전해볼 만한 수준이니까요.
하지만 여기서 ‘은행 51% 룰’ 논쟁이 발생합니다.
은행 51% 룰이란?
한국은행은 “금융 안정”을 이유로 은행 지분이 51% 이상인 컨소시엄만 스테이블코인 발행 주체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만약 이 룰이 도입된다면?
- 핀테크 스타트업은 과반 지분을 은행에 넘겨야 발행 가능
- 사실상 은행 주도 사업이 되어 핀테크의 혁신성이 희석될 우려
- 자본력 있는 대형 금융그룹만 시장 진입 가능
정무위 민병덕 의원은 “기득권에 편승해서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것은 망하는 길”이라며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현재 이 쟁점은 정부안에서 결론이 나지 않았고, 국회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개발자 입장에서는 누가 주도권을 쥐느냐에 따라 기술 스택과 아키텍처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은행 주도라면 기존 코어뱅킹 시스템과의 연동이 중요해지고, 핀테크 주도라면 마이크로서비스 기반의 유연한 아키텍처가 강점이 될 것입니다.
5. 해외 스테이블코인 지점 설립 의무화
테더(USDT)나 서클(USDC) 같은 해외 스테이블코인은 국내 지점을 설립하지 않으면 유통이 불가능해집니다.
현재 국내 거래소에서 USDT 페어로 거래하는 이용자들에게는 상당한 변화입니다. 테더나 서클이 한국 지점을 설립할 것인지, 아니면 한국 시장을 포기할 것인지에 따라 시장 구조가 크게 바뀔 수 있습니다.
시스템 개발 관점에서는 다음과 같은 변화가 예상됩니다.
- 해외 스테이블코인 거래 기능의 점진적 폐기 가능성
- 원화 스테이블코인 기반 거래 시스템 신규 개발 수요
- 기존 USDT 기반 정산 시스템의 마이그레이션 작업
6. 금융위 업무보고에서 디지털자산이 빠진 이유
흥미로운 점은 12월 19일 대통령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디지털자산 관련 언급이 거의 없었다는 것입니다. 코스닥 시장 정화, 국민성장펀드, 서민금융 확대 등이 주요 의제였고, 스테이블코인이나 STO는 “별도 언급 없이” 지나갔습니다.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 정치적 부담: 디지털자산은 여전히 논쟁적인 주제라 대통령 업무보고 자리에서 다루기 부담스러웠을 수 있습니다.
- 세부 조율 중: 은행 51% 룰 등 핵심 쟁점이 해결되지 않아 공식 발표가 어려웠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 우선순위: 코스닥 시장 정화가 더 시급한 현안으로 판단되었을 수 있습니다.
어쨌든 디지털자산기본법 논의는 국회와 금융위 실무선에서 계속 진행 중이고, 22일 민주당 TF 회의에서 정부안이 논의될 예정입니다.
맺는 글
디지털자산기본법은 단순히 “코인 투자자를 위한 법”이 아닙니다. 핀테크, 블록체인, 금융 시스템 개발자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변화입니다.
개발자가 기억할 포인트
| 변화 | 개발자에게 의미 |
|---|---|
| 무과실 배상책임 | 보안 투자 증가, 방어적 코드 필수 |
| ICO 허용 + 연대 책임 | 외주 계약 시 책임 범위 명확화 필요 |
| 스테이블코인 제도화 | 새로운 결제/정산 시스템 개발 기회 |
| 해외 스테이블코인 지점 의무 | 기존 USDT 기반 시스템 마이그레이션 |
금융 도메인에서 일하다 보면, 법과 규제가 곧 시스템 요구사항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번 법안도 마찬가지입니다. 법안의 방향을 미리 파악하고 준비하는 것이 곧 경쟁력이 될 것입니다.
내년 1~2월 법안 처리 결과에 따라 추가적인 분석 글을 작성해볼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