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는 글

러시아 최대 국영은행이 이더리움 같은 공공 블록체인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과, 미국에서는 디지털자산 규제 법안이 또 연기되었다는 소식이 같은 날 쏟아진 것이다.

한쪽에서는 제재 속에서도 블록체인을 향해 달려가고, 다른 한쪽에서는 세계 최대 경제대국이면서도 아직 규제 틀조차 못 잡고 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두 뉴스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디지털자산은 이제 실험이 아니라 제도권 편입 단계”라는 것.

PG 개발자로서, 이 흐름이 결국 우리 시스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정리해보았다.

1. 러시아 스베르방크: 제재 속의 블록체인 도입

러시아 최대 국영은행 스베르방크(Sberbank)가 공공 블록체인과 자산 토큰화를 검토 중이라는 소식이 흥미롭다. 1억 900만 명의 개인 고객과 300만 개 이상의 기업 고객을 보유한 거대 은행이 디파이(DeFi) 솔루션까지 살펴보고 있다니.

왜 러시아인가?

서방 제재로 SWIFT 네트워크에서 배제된 러시아 입장에서, 블록체인은 ‘대안 결제 인프라’로서의 의미가 크다. 기존 국제 송금망을 우회할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기존 국제 송금]
러시아 은행 → SWIFT → 중계 은행 → 수취 은행
              ↓
           (제재로 차단)

[블록체인 대안]
러시아 지갑 → 공공 블록체인(이더리움 등) → 수취 지갑
              ↓
           (네트워크 자체는 막을 수 없음)

물론 러시아 중앙은행은 여전히 민간 디지털자산에 부정적이고, 디지털 루블(CBDC)을 선호한다. 하지만 스베르방크의 포포프 부이사장이 “이더리움은 성숙한 인프라와 투명한 구조 덕분에 글로벌 시장 접근성이 높다”고 언급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제재를 받는 국가의 최대 은행조차 퍼블릭 블록체인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 이는 블록체인이 단순한 ‘투기 수단’이 아니라 ‘결제 인프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2. 미국 상원: 디지털자산 법안, 또 연기

반면 미국 상원은 디지털자산 시장 구조 법안 처리를 내년으로 미뤘다. 가상자산을 증권과 상품으로 구분하는 기준, SEC와 CFTC 간 감독 권한 배분 등 핵심 쟁점에서 이견이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의 ‘2단계 입법 지연’과 데자뷔

이 뉴스를 보면서 한국의 가상자산 2단계 입법 지연이 떠올랐다. 우리나라도 “누가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것인가”를 놓고 한국은행과 금융위가 부딪히며 해를 넘기게 생겼다.

결국 세계 최대 경제대국도, 우리나라도 ‘규제의 구체적인 그림’을 그리는 데 시간이 걸리고 있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미국은 큰 방향성(디지털자산 제도권 편입)에는 합의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3. FSOC의 태도 변화: ‘위험’ 대신 ‘제도화’ 강조

가장 주목할 뉴스는 미국 금융안정감독위원회(FSOC)의 2025년 연례 보고서다. 디지털자산에 대한 경계 수위를 대폭 낮췄다.

Before vs After

항목 2024년 보고서 2025년 보고서
스테이블코인 뱅크런 위험 경고 경고 삭제
디지털자산 시장 전염 가능성 강조 규제 명확성 강조
은행 활동 사전 승인 필요 승인 요구 삭제

특히 지니어스법(GENIUS Act) 통과의 영향이 컸다. 결제용 스테이블코인 발행자에 대한 연방 규제 체계가 확립되면서, “이제 규칙이 생겼으니 위험 경고를 줄여도 된다”는 논리가 작동한 것이다.

개발자가 읽어야 할 시그널

FSOC 보고서에서 눈에 띄는 부분이 있다.

“은행들은 안전성과 건전성, 기존 법규를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디지털자산 보유, 커스터디, 토큰화, 스테이블코인 준비금 예치, 퍼미션리스 블록체인 활용 등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퍼미션리스 블록체인(Permissionless Blockchain). 즉 이더리움 같은 공공 블록체인에 미국 은행들이 공식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러시아 스베르방크가 “이더리움을 본다”고 한 것과 맥락이 닿는다.

4. PG 개발자가 준비해야 할 것

이런 글로벌 흐름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언젠가 우리 시스템에도 블록체인 결제가 들어올 것”이라는 점이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 [미래의 결제 시스템?]
public interface PaymentProcessor {
    PaymentResult process(Payment payment);
}

// 기존 PG 결제
public class LegacyPGProcessor implements PaymentProcessor {
    public PaymentResult process(Payment payment) {
        // VAN → 카드사 → 정산(D+N)
    }
}

// 스테이블코인 결제
public class StablecoinProcessor implements PaymentProcessor {
    public PaymentResult process(Payment payment) {
        // 블록체인 트랜잭션 → 즉시 정산(D+0)
    }
}

결제 수단이 늘어날 때마다 시스템 전체를 뜯어고치지 않으려면, 결제 방식을 추상화(Abstraction)해두는 설계가 필요하다. 지금의 카드/계좌이체 중심 구조에서 블록체인 결제가 추가되어도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 설계를 미리 고민해둬야 한다.

규제 파편화 대응

또 하나 준비해야 할 것은 국가별 규제 대응이다. 러시아는 제재 우회용으로, 미국은 제도권 편입용으로, 한국은 아직 논의 중으로… 같은 기술이 국가마다 다른 법적 지위를 갖게 된다.

이전 포스팅에서 다뤘던 전략 패턴(Strategy Pattern)을 활용한 컴플라이언스 모듈 설계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맺는 글

러시아 최대 은행이 이더리움을 보고, 미국 금융 컨트롤타워가 “위험” 대신 “제도화”를 말하기 시작했다. 디지털자산이 메인스트림으로 진입하고 있다는 신호다.

법안 통과가 늦어지는 것은 답답하지만, 방향성 자체는 명확해 보인다. 결국 블록체인 기반 결제는 온다. 문제는 ‘언제’가 아니라 ‘어떻게 준비하느냐’다.

지금 당장 스마트 컨트랙트를 배우라는 게 아니다. 다만 새로운 결제 수단이 추가되어도 시스템이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확장 가능한 아키텍처를 고민해둬야 한다는 것. 그게 오늘 이 뉴스들을 읽으면서 느낀 점이다.


참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