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디지털자산 경쟁, 한국은 왜 뒤처지고 있나
미국·일본·홍콩의 제도화 속도와 한국 핀테크의 엑소더스
여는 글
연말이 되면 자연스럽게 내년을 전망하게 됩니다. 미국은 스테이블코인 연방법 시행을 앞두고 있고, 일본은 엔화 스테이블코인을 출시했으며, 홍콩은 아시아 디지털자산 허브로 도약하고 있습니다. 한편 한국에서는 법인의 가상자산 투자 허용 여부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입니다.
오늘은 최근 접한 뉴스들을 바탕으로, 개발자 관점에서 본 현재 상황과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정리해보려 합니다.
기술과 규제 사이의 괴리
개발자 관점에서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블록체인 기술 자체는 국경이 없습니다. 이더리움 스마트 컨트랙트를 작성하면 전 세계 어디서든 동일하게 동작하고, API 하나로 글로벌 거래소에 연동할 수 있습니다.
반면 사업화 측면에서는 국가별 규제 환경에 따라 상황이 다릅니다. 한국의 경우 현재 다음과 같은 상황입니다.
- 스테이블코인 발행 → 관련 규제 미비
- 법인 대상 서비스 → 법인 투자 미허용
- 토큰 증권(STO) → 법안 계류 중
한국과 일본에 법인을 둔 하이퍼리즘의 오상록 대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식 산업은 제조업과 다르게 창업자들이 언제든 한국을 떠날 수 있다.”
이 말에서 생각할 점이 있습니다. 소프트웨어 개발은 특성상 물리적 위치에 구애받지 않습니다. 코드와 시스템은 어디서든 동작하기 때문에, 개발자와 창업자들이 규제 환경이 더 정비된 지역으로 이동할 유인이 있는 것입니다.
미국이 보여주는 ‘규제의 정석’
미국 소식을 보면, 규제가 어떻게 혁신의 조력자가 될 수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GENIUS Act는 스테이블코인의 첫 연방 법안입니다. 내년 하반기 시행 예정인데, 핵심은 이겁니다.
- 스테이블코인 발행·결제 규제를 명확하게 정의
- FDIC 감독 은행 자회사의 결제용 스테이블코인 발행 허용
- 재무부가 시행령 초안을 공개적으로 준비 중
“명확하게”, “허용”, “공개적으로” - 이 세 단어가 중요합니다. 규제가 있되, 무엇이 가능하고 불가능한지를 알려주는 겁니다.
더 인상적인 건 주 정부 차원의 움직임입니다. 텍사스는 블랙록 비트코인 ETF에 500만 달러를 투자했고, 추가로 500만 달러어치 비트코인을 직접 매입할 계획입니다. 애리조나, 뉴햄프셔도 ‘디지털자산 준비금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주 정부가 비트코인을 준비 자산으로 보유한다는 것은 디지털자산을 제도적으로 인정한다는 신호입니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기관용 수탁 시스템, 규제 보고 자동화 도구, 세무 연동 API 등에 대한 개발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일본의 JPYC가 보여준 것
일본의 디지털자산 정책은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난 10월, 일본에서 엔화 스테이블코인 JPYC가 금융당국 승인을 받고 정식 출시됐습니다. 1만 계정 개설, 5억 엔 누적 발행. 숫자 자체는 크지 않지만, 의미는 큽니다.
주목할 점은 속도입니다.
- 2023년 6월: 개정 자금결제법 시행
- 2024년 10월: JPYC 정식 출시
법 시행 후 1년 4개월 만에 실제 서비스가 출시되었습니다. 비교하자면, 한국은 현재 디지털자산기본법 2단계 논의가 진행 중인 단계입니다.
하이퍼리즘 이원준 대표의 말이 현실을 잘 보여줍니다.
“일본에서는 법인이 개인과 동일하게 가상자산을 거래할 수 있고, 그 결과 메타플래닛 같은 DAT 기업들이 한국보다 먼저 등장했다. 올해 하이퍼리즘이 운용하는 엔화 펀드의 운용자산이 지난해 대비 3배 성장했다.”
3배 성장. 규제가 명확한 시장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개발자 관점에서 본 현실
한 가지 생각해볼 점은 한국에서 디지털자산 관련 개발 경험을 쌓을 기회가 제한적이라는 것입니다.
| 개발 영역 | 미국/일본/홍콩 | 한국 |
|---|---|---|
| 스테이블코인 발행 시스템 | 실서비스 개발 가능 | 규제 없음 (개발 불가) |
| 기관용 수탁(커스터디) | 수요 폭발 | 법인 투자 불가 |
| 규제 보고 자동화 | 필수 기능 | 규제가 없으니 보고할 것도 없음 |
| 토큰 증권(STO) 플랫폼 | 이미 운영 중 | 법안 계류 |
해외에서는 실제 서비스를 개발하면서 노하우를 축적하고 있습니다. 반면 한국 개발자들은 실서비스 개발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은 상황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 격차가 기술 격차가 아니라 경험 격차라는 것입니다. 한국 개발자들의 기술력 문제가 아니라, 실무 경험을 쌓을 환경의 차이인 셈입니다.
러시아 사례: 규제 프레임워크의 의미
흥미로운 사례가 있습니다. 러시아 중앙은행이 비트코인 등 디지털자산 합법적 매입을 허용하는 프레임워크를 제안했습니다.
조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 일반 투자자: 지식 테스트 통과, 유동성 높은 자산만, 연 30만 루블 한도
- 자격 투자자: 익명 코인 제외 모든 자산, 한도 없음
- 결제 수단 사용은 금지
“사되 쓰지는 마라”는 접근이지만, 규칙이 명확하다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 법인은 투자가 불가하고 개인은 투자할 수 있으나 이후 활용에 대한 규정이 불명확합니다. 규제 프레임워크의 완성도 측면에서 보완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개발자로서의 대응 방안
이러한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고려해볼 수 있는 방향을 정리해봤습니다.
1. 해외 시장을 처음부터 타겟팅
한국 시장만을 대상으로 디지털자산 서비스를 개발하는 것은 리스크가 있습니다. 일본, 홍콩, 싱가포르 등 규제가 정비된 시장을 처음부터 고려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소프트웨어의 특성상 지역에 구애받지 않고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규제 준수 로직을 핵심 역량으로
어느 나라든 규제는 생기게 마련입니다. KYC/AML 검증, 거래 한도 관리, 세무 보고 자동화 등 규제 준수(Compliance) 로직을 설계하는 역량은 글로벌 시장에서 통용됩니다.
3. 전통 금융 + 블록체인 연동 경험 쌓기
결국 디지털자산도 금융입니다. 전통 금융 시스템(코어뱅킹, 정산, 결제)에 대한 이해가 있으면, 디지털자산 분야로 전환할 때 강점이 됩니다. 현재 진행 중인 정산 시스템 개발 경험도 향후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맺는 글
2025년, 미국은 스테이블코인 연방법을 시행하고, 일본은 분리과세로 전환하며, 홍콩은 아시아 허브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 아직 진행 중인 부분이 많습니다.
현재 상황을 냉정하게 보면 긍정적이지만은 않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전통 금융 시스템에 대한 이해를 심화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기술 역량을 준비해두려 합니다.
“규제가 없어서 불안하다”는 것은 역설적인 상황입니다. 명확한 규제가 있어야 그 안에서 혁신이 가능하다는 점을, 해외 사례들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국의 디지털자산기본법 2단계가 어떻게 진행될지 지켜볼 예정입니다.
참고 기사
- 내년 미국 디지털자산 정책 방향… 스테이블코인·시장구조법 시행 임박 - 블록미디어
- 가상자산도 이제 ‘기관투자자’ 주도…’코인 선진국’ 경쟁서 뒤처진 韓 - 스포탈코리아
- 러시아 ‘코인’ 제도권행… “사되 쓰지는 마라” - 블록미디어